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게 벼만이더냐
꽃도 그렇더라
한가닥 여린 가지에
세상 풍파를 다 짊어지고
오늘도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
세상은 고개 숙인 사람에게 더 숙이라고 요구하고
가진 것 없는 이에겐
옷 벗기를 강요한다
나무여 꽃나무여
너는 왜 그리 많은 꽃봉오리를 달았더냐
영웅은 없고 졸부가 들끓는 시대에
꽃을 본다고 즐거우리
담벼락 밑에 홀로 자라 네 아무리 고고한들
세상은 줄이요
권력은 편을 갈라 커진다
부목을 대어줄까
끈으로 묶어줄까
섧게 자라 혼자 익었으니 그리 살게 그냥 둘까
아...삶이여 정답이여
어디서 왔는지? 정문 기둥 옆에서 자라기 시작한 꽃나무 하나. 가녀린 몸통이 너무 애잔하여 가지를 잘라줬더니 이렇게 꽃을 피웠다. 꽃 이름도 꽃나무 이름도 모르지만 문득 오늘, 꽃이 너무 많이 달린 네가 힘겨워 보였다. 한 세상 살아내는 일에 힘들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겠냐만 아픔을 이겨내고 꽃봉오리 몇 개를 솎아줄까 한다. 네가 허리 펴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