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감나무 발견
아들이 입대한지 2주째에 1중대 3소대로 확정되었다는 소대장의 문자가 왔었지요. 전화도 편지도 안 되던 상태라 소대장의 문자가 어찌나 반가운지 소대장에게 답장을 몇 자 보냈더니 나중에 그걸 또 소대장이 소대원들 앞에서 읽어주더라는 겁니다.
3주째에 접어드니 편지도 보내라 하고 딱 한번 전화통화도 가능하다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저께 저녁에 아들이 전화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자다가 전화를 받은 마누라 목소리가 다 떨리더니 이건 완전 이산가족 상봉 비스무리 하더군요. 통화 시간이 딱 3분만 허용된다고 해서인지 마음이 급한 마누라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다 못하고 수화기를 넘겨주는데 웬걸 견딜만 하냐? 고 묻고 괜찮다! 하고 나니 나도 별로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남자도 좀 수다스러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마누라에게 수화기를 건네줬더니 1분 남았다고 하는데 마누라는 다급히 밥 많이 먹고 몸 잘 챙기라고 매일 집에서 하던 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3분이 총알 같이 지나가고 수화기를 놓고 나서야 마누라는 뭐를 못 물어 봤네? 뭐는 어찌 했는지? 왜 통화 시간을 3분만 주는 거냐? 고 국방부를 원망하더군요.
그래도 마음이 엔간히 놓이는 것이 목소리에 박력이 조금 붙어 있는 걸로 봐서 군대가 꽤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그 느려 터진 놈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구보하고 체조하고 밥 먹고 연병장을 어떻게 구르나 상상이 안 가더니만 그런대로 잘 적응해 주고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더군요.
그러고는 우리 가족 셋은 각자 자기 방에 틀어 박혀서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나랑 늦둥이는 열심히 그리고 있는데 마누라는 8시 드라마 다 보고 쓴다고 꿈쩍도 않더군요. 그러고는, 넨장! 잠깐 볼펜을 굴리더니 대여섯 줄을 써놨는데, 아들아 사랑한다. 건강한 몸으로 휴가 때 보자. 밥 많이 먹어라!......음. 참 간단하더만은요. 어제 한 잔한다고 늦게 들어갔는데 아들에게 답장이 와 있더군요.
너무 힘들다. 장난이 아니다. 군을 너무 쉽게 보고 입대를 한 거 같다. 가족사진 좀 보내 달라. 자기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일촌들에게 전부 주소 가르쳐 줘라. 조교들이 왜 그렇게 쌍욕을 해대는지 이해가 안 간다. 훈련 마치고 시험 잘 쳐서 집 가까운 데로 보직을 받고 싶은데 군대와서까지 공부를 해야 되니 수능시험은 저리가라다. 등등....사연을 보니 사람이 좀 되가나 싶습디다. 인간은 확실히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게 맞는 모양입니다.
요즘 디카로 사진을 찍다 보니 그게 또 다 컴 안에 있기만 했지 인화한 게 없어서 보내줄 가족사진 찾느라 앨범을 뒤져 보니 군대 간 큰놈 중학생 때 사진 밖에 없더군요. 그거라도 보내고 보니 참 갑자기 우리 부부가 무지 젊어지더군요.
3주째부터 인터넷으로 아들이 훈련 받는 걸 볼 수 있질 않나 공부하는 걸 다 볼 수 있으니 세상이 좋아진 거는 틀림없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편지를 자주 써 보내라 하니 짜달시리 할 말도 별로 없는데 편지지 메꿀 일이 걱정입니다. 마누라는 아들한테 그리 할말이 없나? 하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럼 받아 적을 테니 할 말을 해보라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놈도 지금은 힘든 훈련병 시절이라 가족이 그리울 테지만 좀 있으면 여유가 생겨서 편지도 별로 쓰지 않을 듯싶은데 제 말이 맞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