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봉하
아들이 두 번째 휴가를 나왔다가 어저께 복귀를 했습니다. 표정이 많이 밝아진 듯했습니다. 그 정도로 표정이 밝아지기까지 제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긴 시련이 있었습니다. 죽을 것 같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몇 번이나 부대 간부와 통화를 해서 걱정 마시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결국 첩첩산중의 그 부대를 찾아가게 되었지요.
물론 집에서도 가족회의가 열려 온갖 방안을 다 찾았습니다. 기관에 근무하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망라하니 인맥이 국회까지 닿더군요. 미우나 고우나 가족의 힘이 크더이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대전쯤 가는데 중대장이라는 양반이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서는 자기가 잘 해결하겠노라고 하는데 얼마나 화가 나던지? 서울에 도착해서 경의선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택시로 부대를 찾아갔는데 부대에서도 이슈가 되었는지 정문에 도착하니 헌병이 먼저 알아보더군요.
임진각이 코앞인 하꼬방 같은 부대에 복무하려고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나 싶더이다. 안내 군인을 따라 작은 사무실에 도착하여 녹차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안 좋은 일로 오시게 해서 죄송하다면서 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들어오는데 중대장 똥배가 보통이 아니더이다. 최전방에 근무하는 중대장이 저리 자기관리도 못하는데 무슨 사병 관리를 잘할까 싶더군요. 다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냥 변명 비슷한 이야기들뿐이라 듣다 못한 마누라가 눈물을 흘리고 저도 화가 나서 이런 부대내 폭력 상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으니 적정한 경로를 통해 조치를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니 중대장 낯빛이 변하더군요. 다 자신의 신변 걱정이 우선이겠지요?
아들을 불러 달랬더니 야간근무를 서고 아침밥도 먹지 않고 자고 있다는 아이를 데리고 오더군요. 초췌하게 야윈 자식을 바라보는 마누라는 말문이 막혀 하고..... 중대장이 아들에게 솔직하게 겪은 상황을 말해 보라고 하는데 그 많은 간부들 앞에서 졸병이 입이 떨어지겠습니까? 그럼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라고 두 시간을 주더군요.
솔직히 전출이라도 시킬 요량으로 그간의 근무 사정을 들어 보니 기가 막힙디다. 내 자식이 아직 거기서 그렇게 복무를 하고 있으니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다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하시겠지요? 간부들이 조금 후 다시 모이니까 차근차근 아들이 상황을 말하더군요. 병사들과 면담을 많이 해서 모든 사실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간부들의 말은 순 뻥이었습니다. 지켜질지 알 수도 없는 약속과 자식처럼 돌보겠다는 말을 듣고 부대장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럭저럭 아들의 군 생활도 3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임을 한 명 받았는데 워싱턴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친구라고 합니다. 그 후임이 말하기를 군대 생활 참 재미있다고 한답니다. 그렇게 재미있기까지 참으로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해주니 정말이냐고?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는군요. 첩첩산골의 작은 부대에서 언어폭력이 사라지고 졸병을 갈구는 관습이 없어지는데 아들의 고통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아들이 휴가를 나와서는 진영 봉하를 가보자고 하더군요. 여전히 봉하에는 많은 국민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추모관에서 영상으로 보는 노 전대통령의 일대기는 요즘의 시국과 어찌 그리 맞아 떨어지는지?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더이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너나없이 강조하는 복지에 대해서도 노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더군요. 복지는 밥만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도 부여하는 것이다. 아들이 추모관에서 한참을 앉아 있더군요. 반칙없는 세상은 언제 올지?
그 양반이 몸을 던진 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참 평화로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이 얼마나 간절하고도 소박한 바람입니까? 누군가는 아방궁이라고 과대포장을 했었던 그의 생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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