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집안야그

돌아온 패딩!

★진달래★ 2015. 1. 18. 09:45

 

작년 연말에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을 찾아뵈려고 패딩을 찾는데 도대체 보이지가 않는 겁니다. 온 방을 다 뒤지고 서랍을 다 열어보아도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더라고요. 이 패딩은 큰아들이 예전에 학교에서 여학생 고기 구워주다가 앞섶을 태워먹었던 옷으로, 수선하려다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서울에서 수선을 했더라고요. 태워 먹은 자리에 빨간 천을 둘러가지고.....

 

그렇게 한 해를 입고서는 다른 옷을 샀다고 택배로 집에 보내온 옷인데 외출할 때 한번 입어보니 그래도 돈을 좀 준 옷이라 그런지 가볍고 아주 따뜻하더라고요. 게다가 친구들이 아주 젊어 보인다지 뭡니까?

 

그래서 애용하던 참인데 이게 갑자기 없어진 겁니다. 솔직히 몇날 며칠을 찾았지요. 베란다 창고까지 다 뒤지고. 심지어 마누라가 어디 술집에 벗어두고 온 거 아니냐고 해서 친구들한테까지 물어봤습니다. 혹시 술 먹을 때 나 빨간 천 두른 패딩 입고 간 거 본적 있냐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직 네가 술 먹고 잠바 벗어놓고 집에 갈 나이는 아니지! 하던 겁니다.

 

심지어 서울 있는 큰놈한테까지 카톡으로 패딩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옷에 발이 달렸냐고 하면서 히히 웃더라는 거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의심쩍은 놈이 작은 아들이라 니가 그 옷을 어쩌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전혀 모른다는 얼굴로 외할머니 뵈러 병원 가는데 그런 옷을 입고 가느냐고 정장하고 가라면서 되레 나무라는 겁니다.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더군요.

 

그래서 그 요양원 가기 전날부터 거슬러 하루하루 일상을 곱씹어 보았더니 딱히 옷을 잃어버릴만한 일이 없었는데 꼭 하루, 재래시장에 장보러 간 그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아파트 마당에 차문을 안 잠그고 사온 물건을 엘리베이트까지 들어다 놓던 날 차에서 옷이 없어졌다는 결론을 내고 옷을 포기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래도 생각이 자꾸 나서 패딩 잃어버린 걸 찾는 법이 없나 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ㅎㅎㅎㅎ 놀랍게도 패딩 잃어버린 사람이 컴퓨터 안에 우글우글하더라는 사실입니다.

 

해가 바뀌고 나서 큰아들이 방학이라 며칠 쉬러 왔을 때 또 패딩이이야기가 나와서 한동안 떠들썩했는데 작은아들이 학교 간 사이에 큰아들이 작은 놈 폰을 열어봤었나 봅니다. 근데 놀랍게도 작은 아들의 카톡 안에 그 패딩의 행방이 담겨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 아빠가 그 옷을 유달리 찾는데 어쩌지?” 라고. 옇던 간에 내게는 아무 말도 안하고 서울로 돌아간 아들이 제 엄마한테 패딩이야기를 하면서 조만간에 동생이 이야기를 꺼낼 테니 기다려보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ㅋㅋㅋ결론은 어제 그 패딩이 집에 돌아왔다는 겁니다. 말끔히 세탁을 해서 말이지요. 마누라에게서 그간의 사유를 듣고 어찌나 화딱지가 나던지 당장 작은놈을 쫓아내버리려고 했더니 때 아니게 쿨한 마누라가 그냥 아무 말 말고 참으라면서 당신이 그렇게 그 옷을 좋아하는 줄 몰라서 친구에게 입으라고 준 모양인데 하도 찾으니까, 또 시간이 갈수록 말도 못하고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가져왔으면 된 거 아니냐고? 또 애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냐고 하는 겁니다.


어저께 아침에 시무룩하게 밥 먹고 있는 아들에게 뭐, 아빠한테 할 말 없느냐고 물었더니, 죄송해요! 딱 한마디 건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냥 퍼부어 버렸답니다. 한마디만 했으면 그렇게 몇날 며칠을 옷을 찾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아직까지 짜식이 말도 안하고 시무룩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알고 보니 옷을 빌려준 친구가 방학동안 외국에 나갔다가 온 모양이더군요. 그래도 그렇지 패딩을 친구에게 빌려줬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이런 사단이 안 나는 일인데...하긴 그 전에도 아들놈이 친구들이랑 옷을 바꿔 입고 온다든지 모르는 조끼랑 바지를 입고 와서는 제 엄마한테 야단을 맞던 기억이 나기는 합니다만 설마 제 애비가 입고 다니는 옷을 친구에게 빌려 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네요.

 

어쨌든 옷을 찾고 보니 술집에 벗어두고 왔겠지? 애도 아니면서 옷을 잃어버리고 다니냐? 하는 마누라의 오해를 씻어버렸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개운하답니다.

 

그리고 세상에 믿지 못할 놈 중에 친자식도 포함된다는 거 꼭 기억해 두려고요!












'집안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왜 이럴까?  (0) 2015.07.11
죽은 시계와 할머니  (0) 2015.06.13
장모님.........  (0) 2014.12.21
지난 일요일에.....  (0) 2014.10.15
추석 소묘  (0) 201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