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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야그

무척 길었던 하루.....

★진달래★ 2024. 6. 23. 11:56





늦둥이 아들이 어제 지방직 시험보는 날이었습니다. 시험장소가 다른 이웃시여서 하루 전날 모텔을 예약해둔 곳에 데려다 주고 왔지요. 평소에 공부를 좀 더하지 시험 전날 공부한다고 메고가는 가방이 엄청 무겁더만요. 어제 아침 6시에 일어났으니 모닝콜 안 해줘도 된다기에 알았다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데 속이 타서 숯덩이가 되지만 스트레스 받을까봐 평상시에도 시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 기도만 하고 지냈는데 시험이 끝난 시간인데도 연락이 없는 겁니다. 점심을 먹나? 시험을 망쳤나?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고 박물관 옆의 숲을 때리는 빗소리가 큰 파도소리처럼 들리는데 느지막하게 전화가 울리더군요. 아들이었어요. 울고 있더군요.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는 버스에서 내리다 카드를 바닥에 흘렸는데 그거 주우려고 하다 무릎이 삐끗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가방이 너무 무겁더라니... 


근무 중이긴하나 당장 데리러 가야겠는데 위치를 물으니 낯선 곳이고 비가 쏟아져 분간이 안 될 뿐더러 걷지를 못하겠다니 절단난 거지요. 늦둥이가 공수특전병 출신인데 낙하 훈련 때 무릎을 다쳐 수술했었거든요. 그때처럼 아프대요. 


택시를 타고 일단 집으로 오라니 움직이지 못하는데 택시를 어찌 잡냐는 겁니다. 그냥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길가에 주저앉아 있다니 백주대낮에 이게 무슨 난립니까? 여직원한테 일을 부탁하고 겨우 위치를 알아내 픽업하러 출발하려는데 택시 잡았다는 전화가 오더군요. 시험은 잘 봤냐고 묻고 싶은데 그건 사치였지요. 군대에서 다쳐 민간병원에 수술하러 나왔을 때의 그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일단은 집에 도착해 아파트 마당에서 아들이 타고 오는 택시를 기다리자니 정말 일일이 여삼추더군요. 30여분 동안 심장이 오그라드는데 애가 택시에서 내리지를 못해요. 겨우겨우 부축해서 집에 올라가 옷을 벗기는데 가방이고 옷이고 물에 빠진 쥐꼴이더군요, 마누라는 기절할 판이고. 


버리려다가 혹시나 싶어 놔뒀던 군병원에서 썼던 무릎 보호 장구를 착용시키고 소파에 앉히니 그제야 아들 얼굴이 보입디다. 사는게 장난이 아니지요. 토요일에다 내일까지 병원은 쉬니까 어떻게 할 게 있어야 말입니다. 급한 김에 파스 붙이고 찜질 패드 챙기고 사무실로 왔습니다.


전전긍긍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더군요. 그래도 시험이나 치고나서 다쳐서 다행이라는 얄팍한 생각도 들더군요. 한참 후에 좀 진정이 됐는지 아들이 전화를 했습니다.  채점을 해봤다는 거지요. 한 명 선발하는데 총 22명이 지원을 했고 막상 시험보러 온 수험생은 9명이었다는거. 그리고 하는 말이 몇 점 나왔을 것 같냐고 해서 작년 커트라인보다는10점이 더 나와야 안 되겠냐 했더니 그 정도는 아닌데 안정권에는 들었다는군요. 작년 커트라인 점수라는 거지요. 


시험이 작년보다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니 일단은 좀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진인사대천명이지요.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십자인대가 파열되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지만 시험에 붙기만하면 그거야 뭔.... 


이 늙으막에 수험생 뒷바라지 너무 힘듭니다. 내가 이런데 매일 도시락 싸고 자식 심기 살피며 건강식 챙기는 마누라는 얼마나 힘들까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정말 자식 키우며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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