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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야그

엄마와 장모님

★진달래★ 2005. 4. 12. 13:54
 

올해 연세 일흔둘의 장모님이 허리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다섯째 동서집에서 가까운 병원이라 퇴원하고서 늘 그 동서네에서 간병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모처럼 시간이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장모님을 뵈러 갔더니 아주 반가워하시더군요.


얘기를 나누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처제 들을까 염려하며 장모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네 집에 가면 안되겠는가 하십니다.


안그래도 모시러 왔습니다 했더니 장모님 금방 일어나 옷 챙기고 약 챙기고 바쁘십니다. 그런 장모님을 보고 서울서 내려온 큰처남은 영 마뜩찮아 합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곳이 없다고 했지만 딸 일곱에 아들 둘 중에서도 편하고 덜 편한 자식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고생한 다섯째 동서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른 하시자는대로 하는게 나을 것 같아 점심때가 다된 시간에 동서네 집을 나왔습니다. 뭐가 그리 바빠서 오랜만에 온 형부 점심도 못 먹게 하냐고 장모님에게 궁시렁거리는 처제에게 뭔가 한소리 하려는 아내를 잡아당겼습니다.


장모님이 허리 수술을 했는데 곰거리라도 좀 해드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아내였거던요. 구포대교를 지나 장어골목에 차를 세워 놓고 장어를 사러 들어갔습니다. 횟거리를 사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차안에 있기가 답답해선지 밖으로 나오신 장모님이 애들과 수족관을 살피시더니 지갑을 열어 돈을 주시면서 점심때 먹게 회를 좀 사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입이 째집니다. 이미 소금구이 해먹을 장어도 같이 주문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애들에게는 회가 더 좋다고 하시면서 한사코 돈을 내미십니다.


처갓집 대문이 바로 당항포 앞바다이다 보니 애들이 마누라 못지 않게 회를 잘 먹는 편입니다. 이것저것 사다보니 지갑이 텅 비고 처남이 준 봉투까지 다 써버렸습니다. 상설시장엘 들러 야채를 사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뒷자리에서 처제가 반찬을 뭘 해주던지를 꼬치꼬치 캐묻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평소에 욕심이 좀 많은 편인 다섯째 처제가 짜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만은 장모님이 그 동안 썩 편하게 계시지는 못한 듯 했습니다. 안방에 자리를 깔아 드리겠다니 비워놓은 방으로 굳이 가시겠다고 해 씨름을 한참 했습니다.


장모님이 집에 계시니 참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쏠쏠납니다. 평소 너무나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어머니 평소 아들네에서 며칠 계셔보지 못하셨습니다. 장남이 아닌 차남들 집에서 하루라도 주무시는 것을 대단한 폐로 생각하신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먹을 것 없는 집에 가풍만 엄하다고 자네 집에 가고 싶네! 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장모님과 너무 비교가 되는 우리 어머니 참 불행하게 사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작년에 꽤 많은 상추를 뜯어다 먹은 텃밭 얘기가 나와 장모님께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많은 코치를 받았습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냇가에 빈터를 갈아 밭을 만들었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상추씨와 쪽파를 보내 주셔서 작년 한해 참 재미있게 농사를 지었거던요.


장모님은 베란다 의자에 앉아 구경하시고 저는 텃밭에 나가 좀 이른 김을 매고 상추씨를 뿌렸습니다. 작년에 쏙아 먹고 놔두었던 상추뿌리에서 새싹이 돋아 나오는걸 보니 봄이 필시 오긴 왔나 봅니다. 재작년 장모님 편찮으셔서 우리 집에 한달 계신 후 참 오랜만에 다시 와 계시니 집이 꽉 찬 느낌입니다.


밤새 무슨 얘기가 그리 많았던지 아침 출근길에 보는 마누라 얼굴엔 못잔 잠이 덕지덕지 묻어 났습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장모님 좋아하시는 호떡을 좀 사가지고 가야할 거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퇴근길에 사들고 가는 부라보 콘을 참 좋아 하셨는데 두분은 드시는 음식의 온도차도 참 비교가 되는게 흥미롭습니다.


아마 오늘 오후쯤에는 틀림없이 시골에 혼자 계시는 장인 어른이 전화하실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있게 붙잡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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