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애들야그

사나이 약속

★진달래★ 2005. 4. 12. 14:20
 

초등학교 2학년인 늦둥이가 월말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마누라 인상이 별로 아름답지를 못하게 변해갑니다. “우리 가문에 이 정도까지 머리 나쁜 사람이 없는데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게 틀림없다” 라고 그 무슨 섭한 말씀까지 하시는  겁니다요. 어디 다리 밑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나 암...


늦둥이넘 별로 기분이 나쁜 낌새도 없이 싱글싱글 웃기만하니 제 모친 더욱 열불이 뻗치는가 봅니다. 성적을 보니 다른 과목은 그래도 좀 봐줄만 한데 즐생이라는 과목이 엥! 30점인 겁니다. 즐거운 생활이라는데 미술과 음악이 형편없어 영 즐겁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방가면 노래 절라 잘하는데 의외입니다.


와이프 한동안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 보더니 공부방에서는 예능 과목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냅니다. 바로 점검에 들갑니다. 친구 집이다 아는 학부형 집이다 전화를 돌려대더니 공부방을 끊고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그리 알라 통지합니다. 이럴 때는 가급적 반대하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습니다.


너무 공부공부 하는 건 한참 놀 나이인 애들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말한 게 어저께라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분위기를 보니 주둥이 다무는 게 상책일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애들 공부시키는데 신경쓴 게 뭐냐?”고 소리 들으면 내만 손햅니다. 3학년부터 학원 보내자든 약속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갑니다.


그새 테레비 만화영화에 빠져 있는 늦둥이놈을 닦달해서 학원에 등록 시험 치러 갑니다. 요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이름 있는 학원은 시험을 통과해야 등록을 시켜준다니 세상 참 이상해졌습니다.


큰넘은 초창기부터 마누라가 워낙 신경을 써서 닥달을 해서인지 성적이 학교에서 톱수준입니다. 들리는 소문으로 학교를 방문하면 마누라를 교장실로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한다고 하는데 애 잡아서 엄마들 어깨에 힘 들어가는 순간이겠지요.


가끔 같은 반 엄마가 전화를 해서 애들 공부시키는 방법에 대해 야그라도 할라치면 저는 안방을 나가줘야 됩니다. 그런류의  전화는 적어도 두세시간 이상 간다는 걸 경험과 시련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옆집에 도둑넘이 들어도 전화 못 끊습니다.


형이 공부를 잘하면 그와 비교되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동생인데 늦둥이 넘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자알 먹고 자알 노니 그게 내 자식이지만서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찌됐던 간에 늦둥이 넘에게도 행복 끝 고생 시작입니다. 불쌍하게 됐습니다.


저녁 9시가 되서야 늦둥이 넘 파란가방 하나 메고 들어옵니다. 다행히도 시험은 통과했나 봅니다. 그 마저도 마누라의 기대를 벗어났다면 늦둥이 얼방 죽었을테지요. 그런데 내어 놓는 학원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한숨 푹 나옵니다. 빡빡한 생활에 월 10여만원이 더 지출되야 한다니 한숨이 쏟아지겠지요. 거실에서는 늦둥이 넘 학원에서 주는 가방 패션쇼가 한창입니다.


마누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입니다. 갑작시리 벌떡 일어납니다. 무슨 중대한 결심을 발표할 모양입니다. 일하러 가야겠어! 합니다. 속으로.... 나야 좋지! 싶은 말이 목구멍에서 치받아 나옵니다. 연애할 때 집장만하면 맞벌이 관두기로 약속한거 지키느라 아직 돈벌어라는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았습니다. 근데 흐미..식당 같은데 서빙할거라 합니다. 흐이그....그건 쉬운 줄 아나 보지!


직원이 점심 먹으러 자주 가는 보신탕집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물 맛이 대단한 식당이었기에 기다리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을 지경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들 학원비라도 벌 욕심으로 서빙하러 나온 아줌마가 실수하여 그 뜨거운 탕을 손님의 바지에 엎질러는 바람에 그 식당 한달 후 문 닫고 말았습니다.


그 손님이 대 이을 씨는 다 받아 둔 상태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 달고 나온 물건이 다 삶아지는 바람에 식당주인은 3대가 망할 뻔 하였습니다. 치료비만 6천이 넘었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마누라 겁나서 서빙 포기했습니다.


왕년에 잘나갔던 헤어숖(영어로 하니 좋다!)운영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손놓은 지 거의 15년이나 되어 유행이나 컷 스타일 등이 다 바뀌어 다시 교육도 받아야하고 세미나 비용도 수훨치 않을뿐더러 가게 얻을 돈 있냐고 빠안히 쳐다봅니다. 돈도 없는 놈이 얘기는 뭐하러 꺼냈는지 나도 참! 매를 법니다. 잠만 설치고 말았습니다.


아침밥 먹는 자리였습니다.

마누라 엄숙하게 아이들이랑 다짐을 놓습니다. 이번 달부터 준이가 학원을 다니게 되어 생활비에 여유가 없으니 앞으로 절대 외식 같은 거 없고 시험을 잘 보더라도 피자 통닭 이런 거 시켜 먹는 일 없으니 그리 알아라. 약속하자.


하도 지엄마가 무게 잡고 말하니 이게 다 니 때문이다! 라고 큰넘이 늦둥이한테 퉁박을 주면서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저번 주 일요일이었습니다.


식목일 날 마누라 모임있다길래 애들이랑 낚시를 갔습니다. 봄인데도 불구하고 수온이 아직 낮은 탓인지 오후 2시까지 입질 한번 못 받으니 그냥 배가 고파 넘어갈 지경이 됐습니다. 오늘 엄마도 늦게 올거 같으니까 가다가 우리 점심 먹고 갈래! 큰넘은 만세를 부릅니다. 아빠 멋쟁이 소리까지 합니다. 근데 늦둥이는 엄마와의 약속이 생각나는지 걱정을 크게 합니다. 사나이들끼리 절대 비밀을 지키기로 하고 냉면집으로 갔습니다. 시원한 냉면 잘 먹고 나오다 큰넘이 늦둥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보안유지를 재차 협박 강조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집에 와 컴퓨터 게임을 하던 늦둥이 놈이 이야기 끝에 냉면을 실토하는 바람에 산통을 다 깨고 말았습니다. 손가락을 백번 걸면 뭐합니까? 마누라 왜 나만 빼고 니들끼리 맛있는 거 먹냐고 갑자기 감기 기운이 옴씨로 매콤한 것이 땡긴다 합니다. 저녁에 아구찜 먹으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살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우리집 가훈이 약속을 잘 지키자인데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게 여자 마음이라 했는데 사나이들도 이젠 믿을 수 없게 됐심다.


“우리집 약속은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가훈을 바꿀까 심각히 고민 중임다.


'애들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찌찌도?  (0) 2005.04.18
으이그 샘도 참!  (0) 2005.04.14
아이구 배야..  (0) 2005.04.12
애들이 뭔 죄여  (0) 2005.04.12
날밤까기  (0) 200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