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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근살짝, 알듯 모를 듯 지나가게 사는게 인생

★진달래★ 2005. 5. 3. 10:18

 
4월 7일 목요일 <TV 책을 말하다>에 김지하 시인이 나왔습니다.
시인은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는데...

 

입만 열면 생명을 말해 온 그가 이제 ‘노병사(老病死)’를 말하고 있더군요.

 

그는 ‘책을 읽으면/두 눈이 쓰라리고/글을 쓰든가 먹을 잡으면/정신이 왼통 어지러운’(‘선풍기 근처에’ 중) 예순넷 나이에 이제 ‘늙어 가는 길/외로움과 회한이/가장 큰 병이라는데’ ‘죽음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길 합니다.

 

얼굴에 검버섯이 생겼고 환갑을 넘기면서부터는 죽음이 옆에 와있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의 투사에서 생명 사상가로 그리고 이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시인을 그립니다.

 

시인이 어제 읽어 준 시와 말씀을 대략 간추려 드립니다.

 

 "전에는 난 늙지 않을 줄 알았어요. 죽지 않을 줄 알았고, 항상 청춘이고, 투쟁하고, 외치고, 비판하고, 창조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아! 나도 이제 병들고 늙어서 가는구나. 실감이 납디다."

시를 쓸 때는

목숨을 걸었었다

열여섯부터 그랬다

왜 그랬을까

컴컴한 사창가 언저리를

배회하다 배회하다

가등 밑 전봇대에 수첩을 대고

연필 꾹꾹 눌러서

기괴하고 사악한 몇 마디

갈겨쓰기도 하고

불 꺼진 자취방에 슬금 돌아와

어둠 속에서 수음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날들의 우울을 깨알같이 적어

검은 노트라 이름 지었으니

그 무렵/자유당 말기의

내 정신풍경을 한마디로 뭐라 할까

매독환자

아니면

아편쟁이

증오와 격정과 비탄의 날들

또 알코올과 색정의 그 숱한 밤들, 새벽들!

그래

이제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고

외로움밖에 없고

후회할 일밖에 없으니

개똥같은 인생이다. (‘김지하 옛 주소’ 중)

그는 지난 2년 동안 동대문 이대병원에 다니며 ‘정신신경과’ 치료를 받았고 ‘좌골신경통’을 앓아 수시로 ‘중국 연길에서 사 온/호랑이 고약 파스를 붙였고’ 거의 매일 아내와 ‘함께 뜸뜨러 여의도’에 다녔다고 합니다.

온갖 병에 시달리면서 허전하고 쓸쓸한 삶을 살고 있는 요즈음의 삶을 그는 ‘시 짓고/그림 그리고//가끔은/후배들 놀러와//고담준론도 질퍽하게/아아/무엇이 아쉬우랴만//문득 깨닫는다//죽음의 날이 사뭇 가깝다는 것’이라고 시 ‘김지하 현주소’에서 밝혀 줍니다.

 

다시 태어나면 또 다시 이렇게 살지는 않을거야.

살아온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도 회한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요란하게 살면 끝이 안좋아.

아내에게, 가족에게 미안하고...

젊어서 아내를 고생시키면 늙어서 아내에게 꼼짝 할 수 없어.

인생이란 말이야. 요란하지 않게, 은근살짝,  알듯 모를 듯 지나가게 살아야 하는거야.

 

그렇게 지나온 날을 고백하는 시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아무 것도 아닌 내가 가슴이 턱 막히면서,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삶을 두고 ‘은둔’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이 ‘유목’이라면 나이든 삶이 ‘은둔’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은둔에 대한 욕심이 솟는다고 합니다. 

또한 “60이 넘어 그러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반문합니다.

 

죽음도 그의 관심사입니다. "죽음이 선풍기 근처에 와/빼꼼이 날 쳐다보고 있다"〈선풍기 근처에서>란 시에서도 그것은 느껴집니다.

60을 넘기니 가끔 죽음이 곁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했던 젊은 날을 보낸 시인이 이제 한없이 여린 한 인간으로 돌아와 세상과 마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60이 넘으면 죽음이 날 빼꼼이 쳐다보는 모습이 보인다고 그랬습니다. 때론 선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산다는 게 그런 일이겠지요. 나도 이제 머잖아 시인의 느낌을 공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제 시인이 자신의 시 몇 편을 뽑아 읽어 준 그의 시집, <유목과 은둔>을 구해서 읽어야 겠습니다.


 
가져온 곳: [아름다운 동행]  글쓴이: 다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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