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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야그

적과의 대화

★진달래★ 2005. 11. 2. 22:14
 

부당수수료~~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걸어오는데 흰색 코란도가 옆에 서면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미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억이 안나는 사람이래서 악수를 하면서도 누구신지? 하고 물었더니 “아이고 형님 저 초원부동산입니다” 한다.


싱거븐 짜슥.....그게 뭐 그리 좋은 인연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지....운전석 옆자리를 올려다보니 여자가 얼굴을 돌려 눈길을 피한다. 역시 꼽다는 거겠지. 기실 남자는 샷터맨이고 중개업자는 얼굴 돌리는 그 여자다.


3년여 전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로 이사하기 위해 살고 있던 아파트를 내놓았었다. 매매가 한산하던 시절이라 시기를 1년여 앞당겨 중개소에 내놓았음에도 운이 좋았던지 3일 만에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담박에 중개업자가 권한 가격은 물론 계약금조로 1천만원을 주고 간 것이다.


살던 아파트가 전망도 좋을 뿐 아니라 베란다 앞이 공원이라 매우 맘에 들었었나 보다. 매매를 걱정하던 우리는 한숨을 놓았고 초원부동산도 좋아했다. 그런데 집은 그리 쉽게 매매계약을 하는 게 아니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좀 있자니 집 내놓았다는 소문을 들은 두어명이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하며 집을 사겠다는데 먼저 받은 1천만원이 족쇄가 되었다. 그냥 멀뚱한 채로 5~6백을 날리게 된 것인데 욕심이란 것이 참 사람 기분 더럽게 만들던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어 양자가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나 잔금을 치루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싼값에 집을 넘기게 되도 내색을 못하고 도장을 찍는데 이 중개업자가 택도 없는 중개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엄연히 법정수수료가 있거늘 무조건 50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왜 무조건 50만원이냐고 물으니 애초에 자기랑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더니 집 잘 팔고 돈 받고나니 마음이 변하냐고 한다.


여자가 핏대를 올리는데 우리 마누라는 기가 질려 멀건히 서 있기만 한다. 열 가라앉히라고 말하면서 나도 이 동네 11년 살다가 이사 가는데 기분 상하고 싶지 않으니 조금씩 양보해서 40만원으로 하자니 죽어도 안된단다. 이미 수수료를 50만원 낸 집 산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황당해 했다.


법정수수료가 나와 있는데 안되는 이유가 뭐냐고 나도 화를 내니 법! 법! 좋아하시는 아저씨 맘대로 어디 법대로 함 해보시라고 책상을 탕탕 치는 것이다. 좋다 그럼 법대로 할테니 영수증 주라! 하면서 50만원을 건넸다. 근데 영수증은 못준단다. 아예 없단다.


그럼 나도 50만원은 못주겠으니 40만원으로 하자고 하고 돈을 책상에 두고 나왔다. 뒷통수에다 대고 그 여자 “인생 그리 살지 마라!” 고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그건 모욕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분이 풀리지를 않는 것이다. 부동산관리계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출장 나가려던 참이었다면서 직원이 들렀길래 점심 때 있었던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면 앞으로 인생 제대로 함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담당직원 한참 웃더니만 알아서 조치를 하겠다고 걱정 마시란다.


이튿날 그 씽거운 코란도가 긴히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해서 바빠서 만날 시간 없다고 했더니 30여분 뒤 사무실 로비에 와서 만나달라고 버티는 것이다. 싹싹 비는 것이다. 제 마누라를 거지발싸개 같이 욕을 해대면서....돌려보냈다. 법대로 한번 살아 보자고 했다.


다음날 코란도 친구란 놈이 찾아왔는데 사무실 직원의 조카가 된다한다. 코란도가 나보다 나이가 댓살이나 아래란 것도 그때사 알았다. 직원조카가 말하길 한번만 용서해 주면 안되겠냐고 했다. 알고 보니 부동산 중개수수료 부당징수가 아주 죄가 무겁다고 한다. 과태료는 물론 영업장 개폐까지 문제가 되는가 보다. 담당자가 나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하더란 것이다.


내가 용서하면 여태껏 부당징수 당한 사람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고....그냥 가라 했다. 부동산 담당자 전화 와서 수수료는 환급 됐더냐고 묻는다. 차액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처분내리겠다고 한다.


오후에 코란도 다시 찾아오고 그 잘난 부동산여사장님 울면서 제발 계좌번호 가르쳐 달라고 짜는 것이다. 돈은 필요 없고 법대로 한번 해보자고 했더니 숨이 꺽꺽 넘어가면서 한번만 살려주라고 한다. 생각 짧은 여자가 시근 없이 한소리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한다. 법대로 해보자 해놓고 왜 그러냐니깐 덜덜 떠는 것이다.

 

책상을 내리치던 그 용기는 어디갔는지 하도 꼬락서니가 처량하길래  커피 한잔 가져다 줬다. 용서하시는 거냐고 묻는다. 내 여태껏 살면서 그런 모욕은 사장님한테 첨 들었다 했더니 정말 죄송하다고 한다.

 

내가 103동 사는데 그 여자 좀 후에 108동으로 이사왔던 거였다. 왠지 원수는 아니면서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도 집 팔아주면 무조건 50만원 100만원 받느냐고 정말 한번 물어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나도 그때는 좀 잔인했다는 생각을 한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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