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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야그

시험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진달래★ 2015. 12. 5. 18:37

서울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완전무장 했음에도 다리를 휘감고 도는 찬바람은 매서웠습니다. 폼 잡느라고 패딩을 안 입고 코트를 입고 간 작은아들은 덜덜 떨더군요. 그간 최선을 다한 수험생답게 씩씩한 모습으로 서울역에 나타난 큰놈과 합류하였습니다.

 

미리 예약한 고사장 가까운 모텔에 가방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갔지요. 참! 6만원을 온라인으로 미리 결제한 모텔의 주인은 현금영수증 발행을 거부하더군요. 왜 안 되느냐고 따지려는 저에게 아들이 시험 보러 와서 부정탄다고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제주돈 5겹살로 저녁을 먹는데 그래도 긴장이 되는지 아들은 소주를 딱 한잔만 하더군요. 수험장에서 먹을 간식을 사서 모텔에 왔는데 합격을 비는 쪽지를 붙여뒀더군요. 수험생도 뒤척이고 감기든 놈도 뒤척이고 간만에 꿈에 만난 어머니와 이야기하느라 저도 어떻게 밤을 보냈는지 몰랐습니다.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한 후 애들을 깨워 설렁탕집엘 갔으나 수험생은 입맛이 없어 밥 한 숟갈을 뜨다가 말더니 지난밤에 먹은 돼지고기 탓에 쏟아난 여드름을 두고 짜증을 내더군요. 시험칠 놈의 기분을 풀어줘야 되는데.....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고사장을 가는데 학교 앞에 세울 데가 없어서 근처에서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물바다가 된 운동장에 차가 빈틈없이 서 있고 수많은 고시생 학부모들이 추위에 떨며 응원하고 있더군요. 잘 보고 오께요! 하며 언제 여드름 걱정했냐는 듯이 교실로 올라가는 아들을 두고 오후 3시까지 기다릴 장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카페도 열리지 않았고 근처 공원을 갔다가 도서관엘 올라갔는데 작은 아들은 여기까지 와서 도서관이냐며 투덜거리다가 실내가 따스하니 살만하다고 하더군요. 따스한 커피를 뽑는다는 것이 찬 음료를 눌러 얼음동동커피가 나와 300원을 버리고 다시 뽑은 온커피는 니맛도 내맛도 아니더이다.

 

9시쯤 근처 카페에 가 음료수와 모카커피를 시켰는데 역시나 커피는 믹써가 최고더라는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케럴송 모음인지 때 이른 징글벨 노래가 계속해서 나오고 벽에 붙여둔 외국 배우들이 인상을 쓰고 있더군요. 작은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다가 깨다가 세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는데 아들은 햄버거 애비는 뜨끈한 칼국수로 대립하다가 결국 대국적인(?) 촤이나 푸드로 결정하여 중국집으로 갔는데 빨간줄 한 개로 별로 안 맵다는 홍짬뽕을 먹다가 거의 실신할 뻔 했습니다. 그렇게 매운 걸 보통매운맛이라고 하는 주인도 역시 대국적이더군요.

 

한 시간을 더 골목을 헤매다 고사장을 찾아갔는데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다! ㅋㅋ” 하는 아들의 톡이 와서 그런대로 시험을 잘 봤구나! 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수험생들의 인상이 가지각색입니다. 학교를 벗어나 문제가 어떻더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일단 모르는 문제는 없었지만 모두가 논술이라 채점관의 주관에 달렸다니 기다려 볼 수밖에요.

 

원룸으로 돌아와 종일 떨었던 몸을 데워 횟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데 그냥 집에 갈 거냐? 고 해서 니들끼리 마시고 오라고 카드를 줬더니 12시가 돼서 들어왔는데 비몽사몽간 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서울애들이 이뻐다느니...그럼 지금 여친은 어쩔거냐느니? 도대체 나이가 여섯 살이나 차이나는 둘 중에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분간이 안 가더군요.

 

오후 KTX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이틀 동안 김장하느라 몸살이 났다는 마누라는 작은놈 더러 “말 안 듣고 코트입고 가더니 감기 걸려 왔냐?” 고 소리를 질러대니 작은놈 씩 웃으며 ‘집에 온 게 확실하네!’ 그러더군요. 2박3일간의 서울행.....정말 피곤한 시간이었네요. 춥고 배 고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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