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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그

40대에게 강퇴는 무엇일까?

★진달래★ 2005. 7. 5. 09:01
 

 

새벽 낚시를 갔다 왔던 터라 9시 뉴스를 주둥이 막아가며 하품과 싸우면서 보다가 이불 펴고 막 잠을 청하려는 판에 핸폰이 울립니다.


느낌이 섬찟한 것이 틀림없이 수면을 방해하는 별로 반갑지 않은 누군가의 호출일 것이다 싶어서 받지 말까 2초를 망설였습니다. 이럴 때는 왜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잠시 후회를 하긴 합니다만 그 써비스를 잠시 이용해 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골라 받는 버릇이 생겨서 사내가 이렇게 비겁해지면 안 되지 싶어 써비스를 해약했더랬지요.


받고 보니 이웃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불 껐냐?”

“막 폼을 잡는데 와?”


“맥주 한잔 사줘라!”

“다음에 묵으모 안되겠나? 새벽에 낚시 갔다 와서 엄청 피곤타”


“남자가 넘 일찍 자모 허리 꼬불아진다. 마누라가 잡아 땡기제?”

“짜슥이 마! 무슨 일 있나?“


“니는 내한테 일 없으모 술 몬 묵제?”

“알았다 짜슥아!”


면도도 안했는지 볼때기 털이 수북한 것이 안 좋은 썸씽이 발생했구나.... 하는 직감이 뒷골을 때립니다.


“내 6시부터 기다렸다, 니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나서...”

반술이 되었더군요.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제법 큰 회사에 다니다 신설 회사에 스카웃되어 공장장, 기획실장을 몇 년 하는 거 같더니 지난 번 술자리서 얼핏 다음이 내 차례인 거 같다고.....퇴사압력이 있다더니만 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스카웃 조건으로 그 회사에서 승용차와 아파트를 제시해....와우! 내 친구 중에도 용된 놈이 하나 나오는구나! 하고 모여서 소주 엄청 깠던 적이 어저께 같습니다.

 

그 당시 이 친구는 사람들이 다 저 같은 줄 알았던지 그런 건 차츰 일하면서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는데 세월 지나 노하우 다 전수해 주고 나니 승용차 아파트는 고사하고 이제 퇴사해 달라고 눈에 보일 정도로 괄시를 하고 주요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이양한다는 겁니다.


다른 직원이래야 최근 입사한 사장의 여러 친척 사돈들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프게 등을 찌른 것이 조수로 삼아 엄청 아끼고 열심히 키워 주었던 고교 후배의 배신이라 합니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눈이 다 쾡한 것이 ......미안한 강도가 찐해지길래 맥주를 더 시켰습니다. 물먹듯이 맥주를 마시면서 짜슥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죄 없는 나를 째려봅디다.

 

“맨날 술 먹자고 전화하는 놈은 내고 니는 내한테 몇 번 전화 했노?”

 

내 탓도 아닌 것이 자려다가 생뚱맞게 불려 나온 것도 억울한데 눈치 없는 하품은 계속해서 나오는 겁니다.

 

전무가 어떻고 사장놈이 어떻고.....처음에 연봉문제를 문서로 해야 되는데... 내가 너무 순진하게 노하우 전수를 빨리 해버렸어! 니기미.....18.....이노무 세상 참 엿 같네.....등등.....나도 졸리는 티를 못내면서 가끔 욕도 같이 거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밤 테이블이 없어 술집 복도 간이의자에 앉아 모기한테 헌혈해가면서 맥주에 욕 섞어 마시는 기분 정말 죽입디다.


그 때사 듣고 보니 그 짜슥 평소 허풍에 비해 너무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던 것이.....계산할 때면 그리 술이 많이 취했던 이유일까도 싶었습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필이면 이런 때에 내 아들과 친구인 그의 딸래미 성적이 곤두박질친다고 하고.....나한테는 학교 후배이자 그와는 화공과 동문이기도 한 그의 마누라가 나를 만나서는 절대 집안이야기 하지 마라고 하더라는 이야기까지 다 하면서 그 짜식 술에 절어 갔습니다.


이 나이에 다시 직장을 어디 가서 알아보랴?.....싶은 것이 계산하고 나오는데 쓰러질 듯 비 떨어지는 가로수에 기대어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그가  너무 힘겹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돌아와 다시 씻고 누우려는데 핸폰이 울립니다. 목소리 저음하나는 끝내주는 놈인데 오늘은 영 아닙니다.


“야! 내 이야기 들어줘서 넘 고맙다!”

“........싱겁기는...푹 자거라....함 알아 보께"


전화를 끊고 나서야 술 먹는 내내 힘내라는 소리를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그 말을 한들 친구에게 뭔 힘이 생기겠습니까만 그래도 한번 쯤 해줄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아마 혼자서라도 꼭 위로를 주고받고 싶은 40중반의 우울 탓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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