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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그

친구

★진달래★ 2006. 5. 2. 14:13
 

 

12시쯤 정말 오랜만에 동아리를 같이하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20년 가까이 모임을 하다 의견차이로 깨진지 거의 5년만인 모양이다. 서너군데 직장을 전전하다 2년 전 창업하여 잘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점심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현관으로 나갔더니 그랜져가 스르르 앞에 와 선다. 감사부서에서 보면 접대 받으러 가는 줄 알고 오해 살 일이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하며 많이 늙었다. 사돈 남말 한다고 나보고 더 늙었다고 한다.


밴더공장하는 친구도 트럭을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학과 나온 친구들은 거의 다 사장이 됐다. 대학갈 때는 과를 잘 선택해야 할 일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어디든 가자한다. 시간 널널한 사장하고 내 형편이 같은 줄 아는 모양이다.


청사근처 대구뽈탕 집으로 갔더니 맛있다고 한다. “공무원들 입맛이 어디 보통이야!” 하며 웃는다. 식탁 앞에 앉아 보니 정말 많이 늙었다. 애들 얘기며 부모님 얘기며 마누라 얘기며 바람난 친구 얘기며.............만나지 않았던 지난 5년을 훌쩍 뛰어 넘는다.


돈 많이 벌어도 사는 건 비슷하나 보다.

두 친구 다 부모님이 치매기가 와서 걱정이 많단다. 내 아버지 어머니 그 과정을 다 거쳐 돌아가셨기로 친구 마누라들 고생이 훤히 보인다. 마음이 아프다.


사장 둘이서 밥값 서로 낸다고 하더니 한 친구가 담에 술 한잔 산단다. 구내은행 자판기 커피 마시자는 걸 사무실 로비로 올라와 카푸치노 퍼지를 한잔씩 타주었더니 이게 뭔 커피냐고? 국민의 공복이 세금으로 이리 맛있는 커피 마셔도 되느냐고 지랄을 한다. 변하지 않은 여전한 모습을 보니 즐겁다.


우리는 5.18 학번이다.

봄 축제 준비하는 와중에 강의실로 들어온 총검 찬 군인에게 내몰려 학교를 비워야 했다. 운동장에는 시퍼런 야전 천막이 빽빽하게 들어 서 있었고 휴교했다. 정국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시론에 날카로운 면이 있었던 그랜져는 이미 데모대의 선봉에 서 있었고 곧 지명수배 되었다.


동아리 선후배 9명과 짐을 싸 밤중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피하고 보자하여 그리했지만 결국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고 5공수 부대로 자원입대했다. 사발로 마시게 한다는 공수부대 술 군기 때문에 너무 괴롭다는 편지 참 많이 받았다. 아직 그는 술 한방울 입에 대지 못한다. 술 안 먹고서도 사업 잘한다니 돌연변이다.


언제 총대매고 날을 잡으란다.

신뢰회복 차원에서 전체 멤버들에게 한턱 쏜다고 한다. 일주일에 3~4일은 꼬박 토론하고 주장하며 날밤을 새던 옛 학우의 진면목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나 보다. 오랜만의 해후가 껄끄러울 것 같던 생각은 전혀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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